스틸레토 힐이 탄생한 이유와 변화 양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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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스틸레토의 등장은 패션, 페미니즘, 문화의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입니다. 얇고 찌를 듯한 굽은 둘레가 0.9인치 정도였지만 높이는 자유로웠습니다. 그러나 3인치부터 5인치 혹은 그 이상의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이 사건이 없었다면 유명 잡지와 디자이너들은 그저 평범했을 수도 있고, 유행을 선도하는 패션계의 욕망이 시작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스틸레토는 재료과학의 역사 측면에서도 중요하기 때문에 간과돼서는 안됩니다. 아름다움에는 장인의 전문적인 물리학과 기술력이 녹아 있습니다. 이 명칭은 이탈리아의 단검 스틸레토 로부터 이름을 가져왔는데, 굽의 생김새가 단검처럼 매우 뾰족하기 때문입니다.

 

하이 힐(스틸레토는 하이 힐의 하위 카테고리임)은 원래 남성들이 착장했었습니다. 10세기 페르시아에서 말 안장에 달린 등자에 걸려 끼워지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고정으로 군인들이 말에 잘 안착했고 더 무거운 무기들을 휘두를 수 있었습니다.


결국은 그 문화가 무역 그리고 정치계에 퍼졌고 1500년대 중반에는 네덜란드와 영국 남성의 상징 중 하나가 됐습니다.

 

그렇다면 여성들은 언제부터 하이힐을 착용했을까요? 아마도 17세기 초반에  트렌디한 여성들 사이에서 남성착장이 퍼지자 힐 착장이 대중화 된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래서 힐의 모양이 17세기를 특정하는 요인이 됐습니다.


남성은 크고 뭉툭한 힐을 썼고, 여성은 얇고 좁은 힐을 신었습니다.

18세기에 이르러 남성들은 발꿈치에 뭔가 잘 착장돼있는 모든 것을 포기했습니다. 한때 유행한 신발은 합리주의와 평등의 이념에 어긋난다고 백인 남성들은 여겼습니다. 그래서 카우보이 부츠와 같은 몇몇의 예외적인 남성 물품을 제외하고는, 힐 구두는 오늘날까지 여성성을 부각시키는 감각으로 이어집니다.

 

1천년의 역사 동안 힐의 굽은 더 높고 더 심해졌습니다. 그러나 2차 대전 이전에 제화 작업의 주재료였던 나무는 특성상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나무를 힐 굽으로서 깎아 사용하다보니 물리적 관점에서 여성의 체중을 지탱하기에 너무 약했던 것입니다.


18세기에 구두 수선공과 제화공은 여러 대안을 썼지만 실패했습니다. 발등에 적용할 몸체를 강화하고 굽은 발 끝 대신 밑창의 중앙에 뒀습니다. 그랬더니 여성들이 종종 굽이 쪼개져서 돌아왔습니다.

 

그것은 1950년대에 전면적으로 변화했습니다. 고층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들처럼 패션 디자이너들은 강철의 높은 인장강도 또는 무거운 하중과 높은 강도에서 강하게 견딜수 있는 능력이 제화 공정의 자산임을 깨달았습니다.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1951년 앙드레 페루지아는 그의 송곳 힐을 시장에 선보였습니다. 그것은 4인치 길이였고 너무나 얇았습니다. 1954년 로저 비비에르가 3.1인치 스틸레토를 출시했습니다. 좁지만 극강한 강철을 압출성형하는 능력은 이제까지는 보지 못했던 혁신이었습니다.

 

그러나 또 한번의 진전이 있었습니다. 디자이너들은 합성에 눈을 돌렸습니다. 금속 스틸레토는 강하고 딱딱한 플라스틱으로 매우 빠르게 대체되었습니다. 철보다 훨씬 가볍고 얇은 모양을 금방 완성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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